해인이 데리고 서울대병원 다녀옴. 맨날 함춘약국 갔는데 처방약 한가지가 함춘에 없어서 종로약국으로 갔더니 약사선생님이 처방전 오더 잘못 나온것을 찾아내서 병원에 전화해 고쳐주셨다! 호쿠날린 패치를 0.5미리 짜리로 써 왔는데 (그리고 지금도 0.5가 맞는 용량인데) 1미리짜리로 오더가 나온 것을 보고 소아과 간호사실에 전화 걸어 바로 정정 요청하심. 약사에 대한 존경이 처음으로 생겨난 날.. (감동!) 앞으로도 종로약국 갈거야~

아이들을 너무 귀애하며 키우면 어느순간 애들한테 목매는 사람이 돼버릴까봐 무서워 무신경한듯 지내는 컨셉으로 생활해왔는데 (그리고 둘째가 나오고 나서는 눈코뜰새 없어서 무신경ㅋㅋ) 해인이를 데리고 병원 왔다갔다하면서 왠지 모르게 '너희들이 최고야' 하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그건 이제 돌 지난 그리고 세 돌도 안 된 두 아이가 보이는 어떤 외적인 모습에 대한 뿌듯함이 아니라, 그냥 이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무한한 자긍심으로 다가왔다고나 할까.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해 전신화상후 멋지게 다시 일어난 이지선씨가 이렇게 된 자신과 그리고 자신이 겪는 어려운 일들을 애처롭게 여기지도 않는 것 같아 보이는 자신의 엄마를 '은근계모'라 하며 놀리는데, 나는 이미 은근계모의 대열에 합류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기 전에 만난 이런 저런 청소년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에게 삶의 굴곡이란 그리고 인생의 쓴맛이란, 부모가 어찌 한다 해서 피해갈 수도 없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라는 걸, 그래서 괴로워하는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어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한한 동정이나 애절함이 아니라 아이의 고난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아이의 내재력을 믿으며 침착하게 있어주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이따금은. 혹시 그게 더 깊은 사랑일까 싶어 두 아이가 이런 저런 어려움을 만날 때 부질없는 애절함으로 괜히 아이를 응석받이로도 만들어보고 때론 야단칠 일도 웃어넘어가버리기도 하는 실수를 왕왕 저지른다. 특히 재아가 동생 보고 난 후에 19개월 밖에 안 된, 한창 사랑받고 응석부릴 나이의 녀석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일순간 아기의 역할에서 축출된 상황이 너무나 안쓰러워 그러지 말아야 할 응석도 받아주고 떼도 받아주다보니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애기처럼 행동하곤 한다. 응석은 받아줄 게 아니라 기회가 닿을때마다 더 깊이 사랑해주면 되는 것인데.. (그리고 내가 너무 냉정한 사람인 것 같단 괜한 자괴감 때문에 기준이 뭔지 몰라 더 그러는 것 같다)

이제 해인이가 좀 컸는지라 재아가 동생을 좀 때리거나 깔아뭉갠다 해서 식겁할 시기는 서서히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 다시 시크한 엄마가 되고 있지만서도.. 옛날의 그 '기준있게 시크한' 엄마의 모습이라기보단 '귀찮아서 시크한' 모습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반성반성) 그래도 이 은근계모 혹은 대놓고 계모의 사랑도 언젠간 아이들 속에서 꽃피고 열매맻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어차피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잘 모른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이란 걸 느껴서 나에게 감사하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행복함을 표현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보같은 기대다. 그냥 아이들이 심신이 건강하고 마음의 그릇이 넓고 아름다운 성인으로 자라나는 것, 자신을 찾는 것,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그것만으로 부모의 모든 사랑과 수고는 다 보상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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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아인 2012. 4. 30. 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