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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달 동안 뱃속에 넣고 다니던 아이가 드디어 태어났다. 아이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 하나가 우리 가족의 큰 기쁨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에도 그 자체로 기쁨이 많이 되었다.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된 직장일도 왠지 더 힘차게 하게 되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배려 받거나 직장에서 알게 모르게 챙겨주던 동료들 덕분에 마음이 따스함으로 채워질 때가 많았다. 가르치는 아이들도 심심할 때마다 아기는 잘 크고 있냐고 물어오기도 하고, 초음파사진을 구경하러 교무실에도 올라오고, 칠판에 '김진희선생님 아기' 어쩌구 해서 희한한 그림을 그려놓기도 하고, 아무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열 달을 보낼 수 있어서 피곤하긴 했어도 크게 힘든 줄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그렇게 재미있게 임신기간을 보냈음에도 내가 뱃속의 아이에게 크게 한 방 먹은 순간이 있었는데, 지난 7월 말, 여름방학 발표회를 준비하면서였다. 대부분의 대안학교가 그렇지만 방학식은 종합발표회로 진행되는데 어찌나 준비할 게 많던지 일주일 전부터는 매일 밤 남아서 영어연극 연습을 시키고 소품 만들고 의상준비하고 장비구입해서 사용법 익히고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매일 아이들과 씨름하며 생고생을 한 끝에, 발표회 날엔 보는 이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하며 무사히 연극을 마쳤고, 영어연극반 아이들도 나도 기분이 참 좋았다. 아니, 그저 좋았다고 말하기엔 뭔가 모자라고 기분이 째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날 밤 선생님들과 비싼 데서 회식도 거나하게 하면서 1학기를 마치고 나는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그런데 말 못하는 뱃속의 아이는 방학식 준비가 꽤나 힘들었는지 항상 뱃속에서 용트림을 하던 녀석이 방학식 전날부터 태동이 뚝 끊기더니 사흘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슬슬 걱정이 되더니 별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자책도 되고, 걱정도 되고.. 그런데 주일 예배 때 설교가 시작되니 갑자기 아기가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겠지만 그때 든 생각은 '뱃속의 아이도 내가 재밌고 즐거운 걸로만은 위로가 안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필요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 때는 내 몸의 일부처럼 자리 잡고 있었고 지금도 부모에게 완전히 의탁하고 있는 힘없는 아이이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줄 수 없는 무언가가,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영혼의 허전함이 있을 거란 생각을 그 때 처음 하게 되었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고 그 마음을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도 해주고 싶고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갖춰야 할 것 같고 나의 이러한 점을 고치면 아이가 더 행복해질 것 같고.. 많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우리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하나님이 아이를 만나주시고 그 영혼을 촉촉하게 채워주시지 않는다면, 아이의 영혼이 만족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단한 노력'이라는 것 속에는 아이의 영혼을 위한 기도가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갓 40일을 넘긴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 넘기기에 급급한 나날이지만, 찰나처럼 지나가는 여유 시간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올리고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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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아인 2009. 10. 16. 01:16